더지엠뉴스 이남희 기자 |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长鑫存储)가 차세대 LPDDR6 양산에 성공한 직후 미국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메모리 산업의 기술 추격이 빨라지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를 둘러싼 경쟁도 수출통제와 공급망에서 법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30일 중국기금보 등에 따르면 창신메모리는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에 미 국방부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내고 자사를 ‘중국군 기업(Chinese Military Company)’ 명단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창신메모리는 소장에서 회사가 설계·생산하는 반도체는 민간과 상업용 제품이며 중국군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2025년 1월 처음 명단에 포함된 이후 기업 평판과 상업적 이익이 지속적으로 훼손됐다고 밝혔다.
창신메모리는 명단 지정 이후 1년 이상 미 국방부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며 지정 취소를 요구했다. 회사는 미국 정부의 판단에 사실관계와 적용 법률, 합리적인 의사결정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미 국방부는 진행 중인 소송에는 논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 국방부의 이른바 ‘1260H 명단’은 미국에서 직·간접적으로 활동하는 중국군 관련 기업을 지정하는 제도다. 올해 6월 공개된 명단에는 창신메모리와 장강메모리(YMTC)를 비롯해 알리바바, 바이두, BYD, 니오, 우시앱텍, 유니트리 등 중국의 주요 기술·제조기업들이 포함됐다.
1260H 지정 자체가 미국의 모든 거래를 즉각 차단하는 전면적인 제재는 아니다. 다만 미 국방부는 올해부터 해당 명단과 연계된 계약 제한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 국방부 계약과 공급망에서 해당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효과가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창신메모리가 법적 대응에 나선 시점은 회사의 기술력과 시장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는 국면과 겹친다. 창신메모리는 29일 최대 12.8Gbps 속도의 차세대 저전력 D램 LPDDR6를 양산하고 샤오미 차세대 폴더블 스마트폰 ‘샤오미 18 폴드’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창신메모리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503억1000만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873.64% 증가했다. 글로벌 D램 가격 상승과 판매량 확대를 바탕으로 흑자로 돌아섰으며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어 4위 업체로 올라섰다.
미국의 1260H 지정과 창신메모리의 소송은 이 같은 성장세와 맞물려 있다. 창신메모리가 범용 D램을 넘어 LPDDR6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으로 영역을 확대할수록 미국이 중국 첨단 반도체 산업을 국가안보 문제로 보는 압박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창신메모리는 현재 AI 가속기에 사용되는 HBM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미국 정부 상대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우시앱텍은 지난 6월 같은 1260H 명단 지정이 자의적이고 근거가 없다며 미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도 군 관련 기업 지정에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 법원을 통한 지정 취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 법원은 중국 기업이 미 정부의 군 관련 기업 지정 근거를 문제 삼아 제기한 사건들에서 행정부의 판단 절차와 증거를 심사해왔다. 최근 DJI 사건에서도 미 연방항소법원은 국방부가 제시한 1260H 지정 근거와 행정절차를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창신메모리가 승소하더라도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기술 수출통제 자체가 해제되는 것은 아니다. 1260H 명단과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는 별개의 제도여서 이번 소송의 직접 대상은 ‘중국군 기업’ 지정이다. 따라서 소송 결과가 창신메모리의 첨단 장비 조달 제한을 곧바로 해소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창신메모리의 기술력 확대와 미국 규제라는 두 변수가 동시에 작용한다. 미국의 규제가 유지되면 창신메모리의 첨단공정·장비 확보 속도를 억제하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중국 내수시장에서 스마트폰과 서버·자동차 업체들이 중국산 D램 사용을 늘릴 경우 한국 업체의 중국 시장 점유율에는 별도의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LPDDR6 양산과 미국 국방부 제소가 하루 간격으로 이어진 것은 창신메모리가 처한 현재 위치를 보여준다. 중국 D램 업체가 기술과 시장에서 글로벌 선두권을 추격하는 동시에 미국의 제재 체계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미·중 반도체 경쟁의 전선이 ‘기술·공급망·법률’의 세 축으로 넓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