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엠뉴스 김평화 기자 | 중국 정부가 항일전쟁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는 공식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오는 24일 열릴 예정인 국무원 언론판공실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행사 일정과 기념활동 방향이 공개된다. 2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국무원 언론판공실이 24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 활동 계획을 발표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회견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후허핑(胡和平, Hu Heping) 상무부부장이 참석해 주요 기념 행사 내용과 조직 방안을 소개할 예정이다. 후 부부장은 행사 기획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할 계획이다. 중국은 지난 2015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와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올해 80주년을 맞는 만큼 정치적·외교적 의미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념행사에서는 항일전쟁과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중국의 희생과 기여를 부각시키는 한편, 국제 반파시즘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될 전망이다. 중국 측은 이러한 행사를 통해 역사적 정의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평화와 발전이라는 국가적 메시지를 국내외에 천명
더지엠뉴스 김평화 기자 |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전국 31개 성·시·자치구에서 대규모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항일전쟁기념관이라는 공간이 있다. 현재 중국 전역에는 크고 작은 항일기념관이 500곳 이상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유적지 보존을 넘어 국가적 정체성과 민족 통합의 상징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념관은 베이징(北京, Beijing)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中国人民抗日战争纪念馆, Zhongguo Renmin Kangri Zhanzheng Jinianguan)’이다. 이곳은 루거우차오(盧溝橋, Lugouqiao) 인근에 위치한 항일전쟁 발발의 현장에 세워졌으며,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항전 서사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전시관은 마오쩌둥(毛泽东, Mao Zedong)의 전략 지도, 팔로군(八路军, Balu Jun)과 신사군(新四军, Xinsijun)의 전투 장면, 민중의 참여 등으로 구성되며, 항일 전쟁을 '전 인민의 항전'으로 재현한다. 동북3성 지역에는 지역별 항전의 기억을 담은 기념관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지린성(吉林省, Jilin Sheng)의 퉁화(通化, Tonghua)에는 ‘동북항일연군기념관(东北
더지엠뉴스 김평화 기자 |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중국 전역의 도시들이 자국 역사에서의 항전 기억을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베이핑(北平, 현재 베이징), 상하이(上海), 충칭(重庆) 세 도시는 각기 다른 전쟁 체험과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며 항일 전선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盧溝橋, 노구교) 사건은 베이핑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일전쟁 발발의 기점이자, 중국 전체가 항전 체제로 진입하는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베이핑은 당시 국민당 정부의 북방 전략 거점이었으며, 사건 직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함락됐지만, 중국공산당은 이 지역을 항전의 정신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오늘날 베이징은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中国人民抗日战争纪念馆)’을 중심으로 매년 수백 건의 교육·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루거우차오 인근 완핑성(宛平城)은 보존 상태가 우수한 전쟁 유적지로, 청소년과 당원 교육의 핵심 공간으로 활용된다. 중국 중앙TV(CCTV)는 2025년 항일 80주년을 맞아 ‘첫 번째 총성’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베이핑이 항전의 시작을 알린 도시”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반면 상하이는 항일전쟁 초기 가장 치열한 전면전이
더지엠뉴스 김대명 기자 | 중국 공안당국이 항일전쟁 관련 역사 왜곡 행위에 대해 엄정한 대응에 나섰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허위 사실을 퍼뜨린 이용자 두 명이 공식적으로 법적 조치를 통보받았다. 5일 중국 공안부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저장성과 랴오닝성 등지에서 각각 활동한 두 명의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항일전쟁 당시 주요 전투와 관련한 왜곡된 정보를 게시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들은 사실과 다른 역사적 해석과 조작된 사진을 포함해, 항일전 영웅과 희생자에 대한 모욕성 표현까지 포함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영 매체 환구시보는 전날 보도를 통해 이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사회주의 핵심 가치에 어긋나는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유포했다고 전하며, 공안기관은 이들을 ‘질서 교란 및 허위정보 유포’ 혐의로 정식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과 문화관광부, 교육부 등 관계 부처는 이 같은 위반 행위에 대해 “국가 역사 존엄성과 사회적 책임을 훼손한 중대한 사례”로 규정하고, 후속 교육 강화 및 플랫폼 검열 강화를 예고했다. 중국은 올해 9월 3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을 앞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 모두에서 역사 왜곡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더지엠뉴스 김평화 기자 | 중국이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국가적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역사 전략으로 ‘항일민족통일전선(抗日民族统一战线)’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는 마오쩌둥(毛泽东, Mao Zedong) 주석이 전 민족의 운명을 걸고 설계한 정치·군사적 합작 전략으로,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항일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1937년 7월 7일, 베이핑(北平, 지금의 베이징) 외곽에서 벌어진 루거우차오(盧溝橋, 노구교) 사건은 일본 제국주의의 전면적인 침략의 서막이자, 중국 전역을 휘감은 항전의 기폭제였다. 이 위기 앞에서 중국공산당은 즉각적으로 국민당에 협력을 제안하며, 과거 내전의 골을 딛고 민족 생존을 위한 연합을 선언했다. 이른바 제2차 국공합작(第二次国共合作)이다. 이는 마오쩌둥이 1935년 즈푸(遵义) 회의 이후 당 중앙의 실권을 잡고 처음으로 제안한 전국적 통일전선 전략이기도 했다. 공산당은 자체 조직인 홍군(红军)을 정비해 국민당 정부군 체계에 편입시키고, 명칭을 '팔로군(八路军)'과 '신사군(新四军)'으로 개칭했다. 형식적으로는 국민당 소속이지만, 지휘권은 공산당이 유지한 이 전략은 독립성과 조직력
[더지엠뉴스] 2025년, 중국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전국적인 기념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체성을 구축한 주요 역사로서 항일전쟁은 매년 반복되는 기념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여성들의 투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전 인민 항전’이라는 역사 서사 속에서, 지금껏 그림자에 가려졌던 여성 전사들의 존재가 중국 전역에서 다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최근 항일전쟁 당시 여성들이 수행했던 전투, 정보, 후방지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런민르바오(人民日报)는 지난달 특별 기획면을 통해 “총을 든 여인들, 붉은 피로 적어낸 역사”라는 제목으로 여성 항일투사 12명의 삶을 조명했다. 여기에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활동한 빨치산 여성들, 상하이에서 첩보 임무를 수행한 여성 정보원, 남부 후방에서 부상병을 돌본 의료 여성들의 기록이 총망라됐다. 1930년대 후반 헤이룽장(黑龙江, Heilongjiang)과 지린(吉林, Jilin) 지역을 무대로 결성된 ‘둥베이항일녀전사대(东北抗日女战士队)’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산림지대를 은신처 삼아 일본군 수송로를 차단하고, 기차를 습격하고, 적 군수품을 빼돌리
[더지엠뉴스]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은 2025년, 중국 전역은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고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분위기로 물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기념사업을 단순한 추모 행위로 보지 않고, 민족정신과 국가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뤄양(洛阳, Luoyang), 창사(长沙, Changsha), 타이위안(太原, Taiyuan) 등 세 도시는 단순한 전투의 장소를 넘어 ‘기억의 거점’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뤄양은 중국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점령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1938년 일본군은 허난성에 대한 전면적 침공을 감행했고, 뤄양은 그 중심에 놓였다. 전투는 군사적 충돌을 넘어 도시 전체의 삶을 파괴했다. 당시 황하 일대 마을과 유적지는 폭격과 방화로 소실됐고, 수천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학계는 이를 ‘문명에 대한 공격’이라 명명하며, 현재까지도 뤄양 항전기념관과 박물관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다. 뤄양시 정부는 매년 9월 3일을 중심으로 대규모 추모식을 개최하며, 지방학교 교육과정에 항일전쟁 지역사 교육을 포함시키는 등 역사 전승에 힘을 쏟고 있다. 창사는 후난성의 중심지로서
[더지엠뉴스]항일전쟁의 기억은 단지 중국의 역사로만 남지 않는다.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수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땅을 무대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다. 그들은 단지 한국의 독립을 위한 투사들이 아니었다. 중국 국민들과 함께, 공동의 적을 향해 총을 들고 싸운 동지들이었다. 이들의 이름과 흔적은 오늘날 중국의 전쟁기념관과 역사자료 곳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구(金九, Jīnjǐu) 선생이다. 그는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뒤 중국 정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충칭(重庆, Chóngqìng)으로 이동한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군사조직 창설을 추진했다. 이 결과물이 바로 한국광복군이다. 광복군은 중국 육군참모학교에서 정규 군사교육을 받고 편성되었으며, 중국군과 공동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전투에도 참여했다. 지청천(池靑天, Chíqīngtiān) 장군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으로 활약하며, 중국군과의 연대 작전에 중심에 있었다. 그는 후난(湖南, Húnán)과 쓰촨(四川, Sìchuān)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 전선을 구축했고, 중국군과
[더지엠뉴스] 항일전쟁(抗日战争)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 중 하나로,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중국의 역사적 투쟁이다. 2025년은 항일전쟁 8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은 이 전쟁을 통해 국민의 단결과 민족적 자존심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중국 관영 매체와 정부는 항일전쟁의 주요 전투를 통해 역사 교육과 국민 단합을 독려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중국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10대 전투를 중심으로 그 역사적 의미와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의 해석을 살펴본다. 상하이 전투(淞沪会战, Songhu Battle) 상하이 전투는 1937년 8월 13일부터 11월 12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지속된 대규모 전투로, 중국군과 일본군이 상하이(上海, Shanghai) 지역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싸웠다.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적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일본군은 상하이를 점령하여 중국을 압박하려 했고, 중국군은 이를 저지하려 했다. 처음에는 중국군이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내며 강한 저항을 보였으나, 일본군은 해군과 공군을 동원해 강력한 공세를 펼쳤다. 특히 상하이 외곽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는 도심 전투로 이어지며 민간인 피해도 막대했다. 일본군의 현대적 무기와 강력한
[더지엠뉴스] 2025년 9월 3일은 중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항전했던 역사, 바로 항일전쟁의 승리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 정부는 이 전쟁을 단순한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중요한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시작된 침략은 중국 전역을 전장으로 만들었고, 1945년 일본의 항복까지 이어지는 14년 동안 중국은 3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중국은 매년 9월 3일을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로 지정했고, 2025년은 그 80주년이 되는 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전쟁을 “중화민족이 침략에 맞서 피로써 싸운 역사”라 말하며, “중국이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국유기업, 각종 문화기구들은 이미 8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전, 전사자 추모행사, TV다큐멘터리, 국제 포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 더지엠뉴스는 이러한 움직임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이 왜 이 전쟁을 기억하려 하는가’ ‘이 전쟁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가’를 독자들과 함께 짚어볼 계획이다. 중국이 바라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