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혐중 정서와 음모론, 한중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지엠뉴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중국 선거 개입설'과 이에 따른 혐중(嫌中) 정서가 한중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며, "한국 내정 문제를 중국과 무리하게 연계시키는 것을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는 그간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해 온 중국 정부의 첫 공식 반응으로, 한국 내 혐중 정서 확산과 근거 없는 음모론이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중국대사관은 8일 연합뉴스에 보낸 입장문에서 "중국은 일관되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해왔다"며, "우리는 말하는 대로 행동하며 이에 대해 당당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국민들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최근 일부 정치 세력과 보수층에서 제기한 '중국 부정선거 개입설'이 근거 없는 주장임을 시사하며, 양국 관계에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다.
문제의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일부가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됐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주장은 명백한 허위 사실로 드러났으며, 중앙선관위는 이를 보도한 인터넷 매체를 고발해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허위 정보는 이미 상당수 대중에게 퍼졌고, 일부 극단적인 집단은 이를 빌미로 노골적인 혐중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는 '멸공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약 50여 명의 참가자들은 "멸공! 멸공! 멸공!"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반중 감정을 드러냈다. '시진핑 아웃', '탄핵 무효'와 같은 구호도 함께 외쳐졌으며, 지나가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꺼져라"는 욕설을 퍼붓는 등 혐오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 집회의 주최자인 김정식 전 국민의힘 청년대변인은 "부정선거는 의혹이 아닌 팩트"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지칭한 '주권 침탈 세력'이 결국 중국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러한 집회는 단순한 반중 시위를 넘어,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명동이라는 관광 1번지에서 벌어진 이 집회는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안겼으며,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 역시 신변의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 5년째 살고 있는 A씨는 "며칠 전 종로에 갈 일이 있었는데 보수단체 집회가 열리고 있어 길을 돌아갔다"며, "긴장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중국대사관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많은 국민들이 상대국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생활하고, 여행하고 있다"며 "한국 측이 재한 중국 국민들의 안전과 합법적 권익을 확실히 보장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또한 "우호적인 이웃으로서 중국은 한국이 안전, 발전, 번영을 유지하길 바란다"며, 이는 한국 측에 대한 소중한 정치적 지지임을 강조했다.
한편, 시진핑 주석 역시 최근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양국이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며, "한국과 중국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한중 관계가 단순한 외교적 관계를 넘어,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동반자임을 시사한다.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관계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한국의 수출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화학 산업 등에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반중 정서가 확산되면 중국 내 한국 기업의 활동에 제약이 가해질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국내 일자리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을 고려할 때, 한중 관계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중국은 북한 문제 해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외교적 파트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한반도의 안보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혐중 정서와 근거 없는 음모론은 일시적인 정치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국가로서, 사실에 기반한 논의를 통해 국가 간 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이성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중 관계는 단순한 외교적 관계를 넘어 경제적, 안보적 측면에서 상호 의존적인 관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국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한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이다. 한국과 중국은 우호적인 이웃으로서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며, 이를 위해 양국 국민 모두가 냉철한 판단과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