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엠뉴스 김대명 기자 | 중국 외교가 한 자리에서 미국과 일본, 대만 문제, 중동 전쟁, 러시아 협력, 유럽 관계, 글로벌 사우스 구상까지 한꺼번에 꺼내 들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 나선 왕이의 발언은 중국이 2026년 외교 전선을 어디에 긋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를 압축해 드러냈다.
8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王毅, Wang Yi)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8일 베이징 메이디야센터에서 열린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4차 회의 기자회견에서 중국 외교정책과 대외관계를 둘러싼 질문에 답하며 올해 외교 기조를 전면적으로 설명했다.
왕이는 먼저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외교를 중국 외교의 중심축으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시 주석이 주요 국가 지도자들과 전략 소통을 진행하고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중앙아시아, 한국 등을 오가며 주변 외교의 기반을 다졌다고 말했다. 상하이협력기구 톈진 정상회의와 중국·라틴아메리카공동체 포럼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 결집의 동력을 모았고,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행사에서는 평화와 정의를 내세웠다고도 했다. 이어 올해는 중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제2차 중국·아랍국가 정상회의 등 대형 주최국 외교를 준비하고 있으며, 시 주석의 대외 일정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놓고는 중러 전략협력 파트너십 수립 30주년과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 체결 25주년을 거론하며 양국 관계가 외부 압박과 이간질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왕이는 중러 관계가 평등과 존중, 호혜의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동맹을 맺지 않고 대결하지 않으며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을 재차 부각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가 다시 중요한 분기점에 와 있다며, 중러가 전후 질서를 수호하고 일방주의와 강권정치를 반대하는 데 공동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11월 선전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구상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왕이는 올해 회의 주제를 ‘아태 공동체 건설과 공동 번영 촉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선전 회의는 개방과 혁신, 협력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지대 진전, 역내 연결성, 디지털·지능화·녹색 전환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전역 여러 도시에서 300여 개 활동이 병행되고 각 경제체가 모두 기여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정세와 이란 문제를 둘러싸고는 전쟁 중단 요구를 가장 앞세웠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 이후 전선이 중동 전역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을 두고, 왕이는 이 전쟁은 애초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며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국가 주권 존중, 무력 남용 반대, 내정 불간섭, 정치적 해법, 대국의 건설적 역할이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중동 문제는 지역 국가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색깔혁명과 정권교체 시도는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중국은 중동 국가들과 함께 글로벌 안보 구상을 실천해 지역 질서와 주민의 안정을 되돌려놓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글로벌 거버넌스와 글로벌 사우스를 놓고는 중국이 유엔 중심 질서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왕이는 시진핑 주석이 제안한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이 150개 넘는 국가와 국제기구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구상은 주권 평등, 국제법치, 다자주의, 인간 중심, 행동 지향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유엔의 주도적 지위는 흔들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사우스의 집단적 부상이 세계 대변동의 선명한 징표라며, 개발도상국들의 발언권과 대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제질서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 77개국 그룹과 중국 같은 플랫폼을 통해 남반구 국가들의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중미 관계를 둘러싼 언급은 긴장 관리와 고위급 교류에 무게가 실렸다. 왕이는 중국과 미국이 서로 교류하지 않으면 오해와 오판이 커지고 충돌과 대결로 갈 경우 세계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를 바꿀 수는 없지만 상대방을 대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며 상호 존중과 평화 공존, 협력 상생을 강조했다. 그는 양국 정상 간 교류가 전체 관계의 안정판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면서 2026년을 중미 관계의 중요한 해로 규정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양측이 충분한 준비를 하고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며 위험을 관리하고 불필요한 방해 요소를 걷어내는 일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도 마주 보고 걸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 외교에서는 아시아의 안정성과 중국의 역할을 함께 부각했다. 왕이는 세계가 다사다난한 시기에 들어섰지만 아시아는 여전히 비교적 안정과 성장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아시아의 세계 성장 기여율이 60%를 넘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이 줄곧 친성혜용의 주변외교 이념과 운명공동체 구상을 실천해 왔으며, 세력권 분할이나 진영 대립 조장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지역 안정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지역 안보의 안정추이자 발전 번영의 엔진이라는 표현도 꺼냈다.
해외 중국 공민과 기업 보호 문제를 놓고는 외교부의 실무 성과를 수치로 제시했다. 왕이는 지난 1년 동안 해외 중국 공민과 기관이 관련된 중대 돌발 사건 100여 건을 처리했고, 영사 보호 및 지원 사건은 7만9000여 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12308 영사보호 핫라인 응답은 60만 통을 넘었고, 해외 안전 공지는 3000여 건 발표됐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된 중국인을 50명 넘게 구출했으며, 주변국과 공조해 온라인 도박과 전기통신 사기를 단속하고 수만 명을 송환 또는 귀환시켰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란과 걸프 국가의 중국 공관들이 중국인의 철수와 안전 확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유럽을 향해서는 관계 회복의 흐름을 키우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왕이는 지난해 이후 중국과 유럽 관계가 잇따라 풀리고 있다며 교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었고 200만 명 이상의 유럽 관광객이 무비자로 중국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유럽 지도자들의 방중도 잇따랐고 새 협력 합의도 도출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유럽이 다극 체제의 한 축이며 국제질서 안정의 중요한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중유럽 경제관계의 본질은 상호보완에 있다며 상호의존은 위험이 아니고 이익 융합은 위협이 아니라고 말했다. 보호주의에서 벗어나 중국 시장이라는 ‘헬스장’으로 나오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가자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는 두 국가 해법을 거듭 강조했다. 왕이는 가자 휴전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휴전을 공고히 하고 재건을 추진하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전면적이고 지속적으로 풀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어떤 구상이나 새로운 메커니즘도 두 국가 해법을 촉진해야지 훼손해서는 안 되며, 유엔이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정당 권리를 지속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일본을 향한 발언은 가장 날카로운 축에 속했다. 왕이는 중일 관계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일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현직 지도자가 대만 유사시를 일본의 존망 위기 사태와 연결시킨 점을 문제 삼으며,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인데 일본이 개입할 자격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집단적 자위권 논리를 앞세워 평화헌법을 사실상 비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80년 전 도쿄재판이 일본 군국주의의 죄행을 입증했다며 일본 사회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중국과 14억 인민은 식민주의와 침략 미화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는 협력과 규칙의 틀을 동시에 밀어붙였다. 왕이는 남중국해가 세계에서 화물 운송이 가장 바쁘고 동시에 항행 안전과 자유가 확보된 해역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인도네시아와 해상 공동개발을 심도 있게 협의했고, 말레이시아와 해상 문제 양자 대화를 진행했으며, 베트남과는 지속 가능한 어업 협력을 벌였다고 소개했다. 중국 해경이 남중국해에서 조난당한 필리핀 선원을 구조한 사례도 거론했다. 남중국해 행동준칙 협상은 이미 중요한 단계에 진입했으며, 각국이 올해 안에 협상을 마무리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이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 동안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였다.
인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상화 흐름을 강조했다. 왕이는 지난해 8월 시 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톈진에서 성공적으로 만났고, 이후 중인 관계가 다시 한 단계 올라섰다고 말했다. 양국은 협력 파트너이지 상대가 아니며, 서로에게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돼야 한다는 인식을 굳혀야 한다고 밝혔다. 국경 지역의 평화 안정 유지, 실질 협력 확대, 브릭스 의장국 역할 지원이 향후 과제로 제시됐다.
대만 문제에서는 한층 강경한 어조가 나왔다. 왕이는 대만은 예로부터 중국 영토였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국가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일본 항복문서, 유엔총회 결의 제2758호 등 국제법 문건이 대만의 지위를 명확히 해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진당 당국의 독립 노선은 타이완해협 평화와 안정의 근원적 교란 요소라고 규정했고, 국제사회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더 분명히 할수록 해협의 안정은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완전한 통일을 향한 역사적 과정은 막을 수없다고 표현했다.
중국 외교가 왜 인류 운명공동체를 목표로 삼느냐는 질문에는 중국식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웠다. 왕이는 인류의 적은 서로가 아니라 전쟁과 빈곤, 기아와 불공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도전을 이기려면 각국이 제각기 움직여서는 안 되며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부상은 전통적인 강대국 패권 경쟁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며, 평화발전의 길을 고수하면서 지속 가능한 평화와 보편 안전, 공동 번영, 개방 포용, 청정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함께 건설하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은 1시간 20분 동안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