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지엠뉴스 구태경 기자 | 중동 전쟁으로 흔들리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국제기구가 사상 최대 규모의 비상 석유를 풀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은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두 문장으로 보면 정책은 공급 안정 신호였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지정학 리스크가 훨씬 크게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펑파이신문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1일 32개 회원국이 총 4억 배럴 규모의 전략석유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출 규모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두 차례에 걸쳐 풀었던 1억8200만 배럴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며 1974년 IEA 창설 이후 여섯 번째 긴급 방출 조치다. IEA 회원국들은 현재 공공 비축유 약 12억 배럴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부 통제를 받는 민간 비축유까지 합하면 약 18억 배럴 규모의 비상 자원이 존재한다. 회원국들은 최소 90일치 순수입량에 해당하는 비축유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 상태에 가까운 상황에서 시장은 방출 계획을 크게 반영하지 않았다. IEA 발표 직후 국제 유가는 일시적으로 3달러 하락했지만 곧바로 반등했다. 1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87.25달러로 전날보다 3.80달러 상승해 4.55% 올랐다. 글로벌 기준 유가인 브렌트유 역시 4.18달러 상승한 91.98달러로 4.76% 상승했다.
12일 아시아 시장에서는 상승세가 더 이어졌다. WTI 가격은 장중 약 8% 급등하며 배럴당 94.14달러까지 올라섰다. 글로벌 에너지 분석기관 아거스(Argus)의 수석 경제학자 데이비드 파이프는 시장이 이미 비축유 방출 계획을 사전에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략 비축유가 실제로 유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실제 방출 속도와 규모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22년 미국이 전략비축유를 풀었을 때 하루 최대 방출량은 약 100만 배럴 수준이었고 약 3개월 동안 평균 90만 배럴 정도가 시장에 공급됐다. 만약 이번에도 비슷한 속도로 공급될 경우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다른 관측은 전략비축유가 근본적인 공급원이 아니라 일시적 완충 장치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분쟁이 장기화돼 대규모 비축유가 사용되면 결국 다시 채워 넣어야 하며 이는 향후 원유 수요를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원자재 연구 책임자 나타샤 카네바는 최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통행이 확보되지 않는 한 정책 수단의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향후 2주 동안 잠재적인 공급 손실이 하루 최대 1200만 배럴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경제장관은 이번 사상 최대 비축유 방출에서 미국과 일본이 가장 큰 물량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11일 인터뷰에서 유가 안정을 위해 미국 전략석유비축량을 일부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협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20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미국 에너지부 역시 12일 성명을 통해 다음 주부터 약 1억7200만 배럴의 전략석유비축유를 방출하기 시작해 약 120일에 걸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같은 날 주요 7개국이 협력해 호르무즈 해협 항행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측은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봉쇄할 능력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군 지휘부는 미국과 동맹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석유가 통과하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