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12.8℃맑음
  • 강릉 15.6℃맑음
  • 서울 13.3℃맑음
  • 대전 15.0℃구름많음
  • 대구 12.6℃맑음
  • 울산 15.2℃맑음
  • 광주 14.9℃맑음
  • 부산 16.8℃맑음
  • 고창 14.5℃맑음
  • 제주 18.1℃구름많음
  • 강화 12.6℃맑음
  • 보은 10.2℃맑음
  • 금산 10.8℃맑음
  • 강진군 13.5℃맑음
  • 경주시 11.3℃맑음
  • 거제 16.4℃맑음
기상청 제공

2025.11.30 (일)

명나라 칙령이 증명한日류큐의 중국 속국 관계 다롄서 재확인

류큐 책봉 체계 복원 전시

 

더지엠뉴스 김대명 기자 | 명나라 조서가 랴오닝성 다롄 박물관에 재전시되며 일본의 류큐 왕국이 중국의 책봉 질서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왔는지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조서는 왕권 승계를 승인하고 충성·봉사·해안 방비 역할을 부여한 공식 문서로, 류큐의 정치 구조가 중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30일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다롄 뤼순 박물관에는 명나라 숭정 2년 제작된 조서의 정교한 복제품이 공개됐다. 문건은 노란색 바탕에 금색 운룡 문양을 두르고, 주홍 인장이 찍힌 형식으로 왕권 계승을 승인하고 사신 파견을 명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조서는 상풍왕이 상녕왕 뒤를 이어 왕위를 잇는 과정을 공식화하며, 왕국 운영의 절제, 왕실 법령 준수, 책봉 질서의 의무 수행 등을 주문했다.

 

문건 설명을 맡아온 한싱팡 전 부관장은 해당 문서가 류큐가 중국의 영향권 안에서 외부 압박을 견디며 조공을 지속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서의 “이웃 나라의 침해를 받았다”는 표현이 1612년 일본의 침입을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이 공격으로 상녕왕이 사로잡히고 보물 약탈이 발생했지만, 이후 왕이 풀려나 조공 체계가 재개되었다는 사실도 명나라 기록과 일치한다고 소개했다.

 

문건에는 상녕왕이 일본의 동향을 조기에 중국에 알렸고, 이로 인해 명 조정이 해안 방위를 강화한 사례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고 한다. 이는 왕국이 외부 위협 속에서도 책봉 관계를 지키며 조정과 긴밀히 소통해 왔음을 증명한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명나라는 류큐 왕조에 총 15차례 책봉 사절을 파견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숭정제 시기의 파견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청대 초기에 류큐 왕 상지가 사신을 보내 명대 칙령과 인장을 반환하고 새 책봉 문서를 요청한 과정이 전해진다.

 

이 절차를 거쳐 조서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고, 청대 역시 명나라의 책봉 방식을 이어받아 류큐와의 전통적 외교 구조를 유지했다는 설명이 함께 제시됐다.



통찰·견해


포토뉴스

더보기